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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 Think

별명의 실체

누구나 하나씩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박화요비의 '개똥이' 처럼 전혀 개연성이 없는 별명이 있는가 하면 '쭌' 처럼 이름을 단순화 시킨 별명도 있고 '족우' 처럼 그 인물의 특징을 그대로 사용하는 별명도 있다. 별명이 한 개도 없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대부분 몇 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정수기 판매원' 이라는 대단한 별명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장난기나 활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친구들은 절대 믿지 않겠지만 나는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고 유일하게 했던 운동은 '돈까스'나 '나이 먹기' 같은 '애들 놀이'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심함은 극에 다달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해서 부모님은 나에게 '음식점 종업원에게 물을 더 달라'는 미션을 시켜서 내 담력을 키우시곤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 속은 항상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고 내 사고는 이미 지구의 수준에 머무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중학교 3학년은 큰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3년 때 나도 여타 애들과 마찬가지로 극상한가를 치닫고 있던 '학원 종합반'을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의 지금 모습을 만들어주었던 '○○○'을 만나게 된다. (이름,얼굴,학교는 기억이 나는데 프라이버시 차원 모자이크)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내 말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마를 줄을 모르고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나는 화술에 목숨을 걸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시기를 계기로 나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점점 터득해갔으며 이제는 술집에서 '언니,이모,삼촌,오빠 아무나 좀 와봐요' 라고 능숙한 목소리로 주문을 하곤 한다. 어차피 내 아주 어릴적 친구들은 하나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놀랄 사람은 없지만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움찔~하는 모습을 가끔 보이곤 한다. 또 나는 그런 모습을 즐기곤 한다. 이렇게 변화된 나는 말로서 여러가지 업적을 이루어나가며 어느샌가부터 '말빨' 이라는걸 가지게 되었으며 Fneo 모임에서 결국 '정수기 판매원' 또는 '다단계 영업 사원' 이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말빨'을 가지게 된 사람으로서 내 인간관계는 거의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 어느 누구와도 만나서 잘 지낼 수 있고 어려움이 없으며 모임에서 재미를 주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내가 모임을 주최하면 20명은 기본이었던 전성기도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술을 먹고 다닌 오지랍도 있었다. 전혀 사귀지 않는 여자애네 집에서 그 애 부모님과 술을 먹고 그 집에서 묶었던 적도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밤새 술 먹는 것도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빈곤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의 활달함은 패시브(Pasive)가 아니다. 지속 효과가 아니고 순간적인 효과다. 지속시간은 랜덤하며 지속 시간이 지나면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렇다고 종업원한테 물 달라고 못할 정도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속칭 '다운 타임'에 들어가면 굉장히 외로움을 타면서 힘들어하는데 이전에는 많아 보였던 '편한 사람들'이 어느샌가 확 줄어들어서 막상 말을 걸고 싶은데 걸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금은 내 말은 뭐든 들어주고 알아주는 ○○○양, 이제는 내 말에 태클도 잘 거는 ○○○군, 다른건 못하지만 들어주는 것은 최고인 ○○○군 정도 한테 밖에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겠다. 친하고 뭐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작 답답해서 이야기할 때 특정 몇 사람한테 밖에 털어놓지 못하니 '만인의 친구' 같은 호칭도 부질 없음을 요새 느낀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섭섭해하는 당신이여,
이 글에 너의 이름이 명시되어있지 않다고 자신을 탓하지도 말고 나를 미워하지도 마라. 나를 안다면 내 행동에 거짓이 없음을 알 것이고 나를 안다면 내가 너를 아끼는 것 또한 알 것이니 그냥 읽고 '그런가보다' 하고 말아라. 어쭙짢은 배려는 죽빵~을 부르는 길이니...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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